28개월 만에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된 박주영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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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서호정 기자]
‘한국 축구의 중심’ 박주영(27, 아스날)이 사라졌다. 특별한 부상이나 경고누적 등의 문제가 아닌 상태임에도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아스날 이적 후 계속되는 경기 출전 실패로 인한 경기력 하락, 그리고 최근 있었던 병역 문제로 논란에 섰던
박주영을 최강희 감독을 결국 뽑지 않았다. 박주영이란 중심 축을 자의로 배제한 한국 축구는 스페인과의 평가전, 그리고
브라질월드컵 최종 예선 1, 2차전을 준비하게 된다.
최강희 감독은 17일 오전 서울 논현동 LG 디스퀘어에서 진행된 대표팀 명단 발표에서 남아공월드컵 이후 박주영의 전유물이었던
10번을 지동원에게 부여했다. 박주영의 이름은 26명 명단에 대한 호명이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박주영이 대표팀 명단에서
아예 사라진 것은 2010년 2월 있었던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 이후 28개월 만이다. 당시 박주영은 소속팀이던 AS모나코에서
당한 허벅지 부상으로 인해 제외됐다. 지난해 있었던 레바논과의 월드컵 3차 예선 최종전에 경고 누적으로 나서지 못했지만 애초
명단에는 포함된 상태였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전후해 박주영이 본격적으로 대표팀의 공격 자원으로 부상한 이후 대표팀 감독이 스스로의 뜻으로 그를 거부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은 과감히 칼을 들었다.
■ 침묵의 박주영, 배제할 수 밖에 없었다
이날 대표팀 명단 발표를 앞두고 집중적으로
촉각이 모인 것은 박주영 선발 여부였다. 아스날 이적 후의 경기력 저하는 지속적인 논란이었다. 지난 3월 쿠웨이트전에서 박주영은
이전보다 확연히 떨어진 경기 감각을 보였다. 그런 와중에 병역 문제까지 불거지며 그의 대표팀 선발 여부에 대한 논란은 태풍처럼
커졌다. 최강희 감독은 경기력에 대한 판단이 최우선이지만 병역문제 같은, 대표팀 선수로서 국민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순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최강희 감독과 대한축구협회는 박주영이 스스로 문제를 풀길 원했다. 조중연 회장과 최강희 감독, 그리고 올림픽대표팀의 홍명보
감독은 지난달 만남을 갖고 박주영의 A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선발에 대한 뜻을 모았다. 그리고 대한축구협회는 박주영 측에
프리미어리그 일정을 마무리하고 병역문제로 인한 논란에 직접 일을 열고 설명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박주영은 침묵했다. 급기야
대표팀 선발에 대한 최강희 감독의 고민이 본격화 된 시기에는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최강희 감독은 16일 자정까지 황보관
기술위원장을 통해 박주영의 몸 상태와 의지를 체크하려 했지만 결국 연락이 닿지 않았다.
병역 문제는 변수였지만 주홍글씨는 아니었다. 최강희 감독은 경기력 논란에도 불구하고 박주영을 선발하려는 의지가 분명히
있었다. 최강희 감독은 “능력이 있는 선수는 환경이 바뀌면 자기 위치를 찾을 수 있다. 그 환경을 대표팀에서도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기력 면에서 박주영과 비슷한 처지인 지동원은 이번 대표팀에 승선했다. 한국 축구에서
갖는 영향력과 위치를 감안한다면 박주영은 당연히 선발됐을 흐름이었다.
그러나 최근 보인 박주영의 태도가 그런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최강희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자칫 대표팀 전체 분위기의
와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대표팀 명단 발표 후 최강희 감독이 남기고 간 말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다.
“선수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대표팀에 들어왔을 때 자기가 자부심을 갖고 얼마나 희생을 할 수 있는지 마음도 중요하다. 경기에
나서는 선수 외의 나머지 선수가 얼마나 헌신하느냐에 경기력이 달려 있다. 대표팀에 오는 모든 선수는 스타고 소속팀의 에이스다.
그런 부분이 용화되지 않으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박주영이 대표팀에 대해 보인 태도는 분명 적극적이지도, 간절하지도 않았다.
최강희 감독은 박주영이 없는 대표팀이란 시험을 자청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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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닫힌 문을 여는 열쇠는 박주영이 쥐고 있다
최
강희 감독은 스페인과의 평가전, 카타르와 레바논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1, 2차전까지 이어지는 향후 3경기에서는 박주영의 추가
발탁도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명단 발표 후 취재진은 여러 상황을 가정하며 박주영 선발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는지를
집요하게 물었다. 그럼에도 최강희 감독은 설령 부상자가 발생해도 현재 대표팀 공격 자원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다는 뜻을 보였다.
이미 선발이 마무리된 대표팀의 6월 일정까지는 박주영을 볼 수 없다.
대표팀의 문은 항상 열려 있지만 그 문을 여는 열쇠는 박주영이 쥐고 있다. 최강희 감독도 시사한 부분이다. 대표팀은 9월과
10월에 우즈베키스탄, 이란을 상대로 최종예선 원정 경기를 치른다. 평가전 등을 예상하면 2개월 사이 4경기 가량의 A매치를 치를
예정이다. 최강희 감독은 “앞으로 계속 대표팀 경기가 있고, 선수 변화도 있을 수 있다. 대표팀으로의 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표팀 선발에서 최강희 감독은 전북 감독 시절 아꼈던 김상식, 조성환, 박원재를 과감히 제외했다. 경기력이 회복이 된
해외파는 적극 선발했다. 구자철과 손흥민, 그리고 이영표 은퇴 후 답을 못 찾고 있는 왼쪽 풀백 자리엔 스위스 무대를 호령하고
있는 박주호를 뽑았다. 과거 이적 문제로 감정이 상했던 염기훈과 기량에 비해 대표팀과 인연이 없던 조병국, 박현범도 선발됐다.
엔트리 전체를 살폈을 때 경기력이라는 명확한 기준에 충실했다.
“박주영은 앞으로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선수 생활을 오래 해야 할 선수다. 입장을 표명하고 올 여름 이적을 해서 소속팀에서
꾸준히 활약을 해 준다면 길이 열릴 것이다.” 최강희 감독의 이 말은 지극히 원론적 대답이지만 선수 개인이 아닌 팀 전체를
생각해야 하는 대표팀 감독으로서 더 이상 꺼낼 수 없는 정답이기도 하다.
이제 최강희 감독은 지난 수년 간 대표팀의 어느 감독도 시도하지 않았던 ‘박주영이 없는 대표팀’이란 시험을 치른다. 박지성과
이영표의 은퇴 공백이 확실히 메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박주영까지 자의로 배제한 것은 자칫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박주영 없이도
6월의 여정을 무사히 마친다면 최강희 감독의 대표팀 내 리더십과 권한은 한층 막강해진다. 하지만 박주영을 배제한 결과가 자칫
엄한 결과로 나타난다면 자충수가 될 수 있다. 박주영은 이번 대표팀에 없지만 카타르전과 레바논전이 끝날 때까지 최강희 감독의
그늘에는 박주영이 계속 따라붙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